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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핫이슈]KBO 40주년 레전드 40인 -불굴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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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의지

 

 

 

 

 

 

 

 

 

 

□ 이상훈

 

이상훈

 

 

 

 

▶순위: 27위

전문가 점수 (80점 만점) 팬 점수 (20점 만점) 총 점수 (100점 만점)
52.31 4.34 56.65

 

▶별명: 야생마

 

 

 

주요 소속구단: LG 트윈스

 

 

 

▶기록:

 

 

 

  세이브왕                           2회 1997년, 2003년

 

  다승왕                               2회 1994년, 1995년

 

  승률왕                               1 1995년

 

  투수 부분 골든글러브       1회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1회 1994년

 

 

▶코멘트: 

 

 항상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마운드로 뛰어가는 그의 모습, 뒷머리가 마치 말의 갈퀴와 닮았다 하여 '야생마'라는 별명이 붙어졌다. 서울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이상훈은 서울권 선수 중 압도적인 기량으로 최대어로 불렸고 당시 주사위 던지기로 1차 지명권을 얻은 LG 트윈스가 지명하며 프로야구 역대 최초로 2억원이라는 몸값에 LG 유니폼을 입었다. 화려하게 입단한 이상훈은 더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1994년 2년 차에 접어든 해, 18승을 올리며 생애 첫 타이틀 획득은 물론 한국 시리즈 1선발로 등판하여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5년에는 무려 20승을 달성했는데 이는 향후 22년간 깨지지 않았던 대기록이다. 이후에는 허리 부상으로 마무리로 보직을 옮겼고 1997년과 2003년 구원왕을 차지한다. 

 

 선발 투수로서 20승과 마무리 투수로서 구원왕을 2번 수상할 정도로 모든 보직에서 최정상급 활약을 보여준 선수이다. 특히 20승을 달성한 1995년, 한일 슈퍼게임에서 1,5차전 선발 등판하여 12이닝 1실점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투수의 퍼포먼스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러한 활약 속 LG 트윈스의 레전드가 되어갔던 그는 2004시즌을 앞두고 당시 감독이었던 이순철과의 마찰로 팀을 떠나게 된다.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그는 '친정 팀 LG를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며 6억의 연봉을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한다. LG 트윈스 또한 그의 등번호 47번을 임시 영구결번 처리하며 예우하고 있다.

 

 

 

 

 

□ 박정태

 

박정태

 

 

▶순위: 33위

전문가 점수 (80점 만점) 팬 점수 (20점 만점) 총 점수 (100점 만점)
40.51 6.63 47.14

 

▶별명: 악바리

 

 

 

▶주요 소속구단: 롯데 자이언츠

 

 

 

▶기록:

 

  역대 KBO 통산 2루수 WAR          4위 34.43

 

  역대 KBO 단일 시즌 2루수 WAR   4위 6.60

 

  2루수 부분 골든글러브                  5회 1991년, 1992년, 1996년, 1998년, 1999년

 

 

 

▶코멘트: 

 

 배트를 이리저리 돌리고, 왼손은 타격 직전까지 배트에 붙었다 뗐다 하는 특유의 타격폼이 먼저 떠오르는 선수.

1991년 혜성같이 등장해 2004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붙박이 2루수이자 전국구 스타였다. 2년 차였던, 1992년 타율 0.335, 14홈런, 79타점과 43개의 2루타를 치며 당시 KBO 한 시즌 최다 2루타 기록할 정도로 화려한 성적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아웃카운트도 박정태의 손으로 만들어냈다. 땅볼을 잡아 송구하지 않고 바로 2루 베이스터치하는 장면은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면 한 번쯤은 본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3년 주루 플레이 중 2루수와 크게 부딪치며 정강이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한다. 어쩌면 선수를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큰 부상인 것이다.

 

 5차례의 거친 수술과 긴 재활 기간을 거쳐 3년 만에 복귀해 0.309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 주장을 맡으며 1998년~1999년 2년 간 2루수 골든글러브는 물론, 31경기 연속 안타라는 극강의 기량을 뽐냈다. 정강이 골절이라는 큰 불행에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낸 성공적인 복귀와 근성 있는 플레이는 '악바리'라는 별명과 함께 지금까지도 후배들에게도 큰 영감이 되는 선수이다.

 

 

 

 

 

 

□ 니퍼트

니퍼트

 

 

24위

전문가 점수 (80점 만점) 팬 점수 (20점 만점) 총 점수 (100점 만점)
40.51 5.93 46.45

 

▶별명: 불멸의 4할

 

 

 

주요 소속구단: 두산 베어스

 

 

 

▶기록:

 

 

 역대 KBO 외국인 통산 승수      1위 102승

 

  평균자책점왕                           1회 2016 

 

  승률왕                                      1 2016년

 

  다승왕                                      1회 2016년

 

   MVP                                        1회 2016

 

  한국시리즈 우승                       2 2015년, 2016년

 

 

 

▶코멘트: 

 

 KBO 외국인 투수 최초 100승, 10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이자 KBO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

2011년 KBO에 입성 후 두산 베어스에서 7시즌, KT 위즈에서 1시즌을 뛴 후 은퇴한 KBO 레전드이다. 매년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 후 일본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려 했지만 그저 한국이 좋다는 이유로 거부한 일화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203cm라는 신장으로부터 높은 타점으로 찍어내는 직구는 KBO 리그 내 타자들에겐 칠 수 없는 마구에 가까운 공이었다. 특히 2016년, 니퍼트는 ERA 2.95, 22승 3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정규리그 MVP를 거머쥐게 된다. 두산 베어스 또한 니퍼트라는 훌륭한 1선발을 앞세워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한다.

 

 단순히 성적이 좋은 외국인이 아니라 누구보다 한국문화를 사랑했던 외국인 선수이기에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보통 외국인 선수의 경우 리그를 무시하거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팀과 융화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니퍼트의 경우 평소 KBO 리그를 존중하는 말과 행동을 보여줌은 물론 항상 겸손한 태도로 모범적인 선수가 되었다. 

 

 

 

 

 

 

 

□ 배영수

 

 

배영수

 

35위

전문가 점수 (80점 만점) 팬 점수 (20점 만점) 총 점수 (100점 만점)
40.51 4.26 44.77

 

▶별명: 푸른피의 에이스

 

 

 

주요 소속구단: 삼성 라이온즈

 

 

 

▶기록:

 

 

  다승왕                                     2 2004년, 2013년

 

  탈삼진왕                                 1 2005년

 

  승률왕                                     1회 2004년

 

   MVP                                       1회 2004년

 

  투수 부분 골든글러브              1회 2004년

 

   한국시리즈 우승                     8회 2002년, 2005년, 2006년, 2011~2014년(4년 연속), 2019년 

 
 
 

▶코멘트: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 1위, 한국시리즈 최다 경기 등판 1위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다. 팀 고졸 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인 2억 5천만 원을 받았다. 팀 내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푸른피의 에이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기대에 부응했다. 특히 선동열 투수코치를 만난 후 배영수는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당시 최대 150km/h대 중반의 강속구와 140km/h를 넘나드는 슬라이더 두 구질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다. 2004년 17승 2패와 ERA 2.61, 다승과 승률 부분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4년 만에 정규리그 MVP까지 수상한다. 그 해 한국 시리즈 4차전 10이닝 노히트 노런 피칭은 당시 배영수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기록이다. 전성기가 꾸준할 것 같았다. 하지만 팔꿈치 통증에도 진통제를 맞고 던지는 것을 반복한 결과,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

 

 2년에 가까운 재활 기간을 거친 후 배영수는 2009시즌 복귀하였지만 무려 10km/h의 구속이 감소했고 볼의 위력도 예전 같이 않았다. 하지만 배영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으로 파이어볼러가 아닌 기교파 투수로 제 2의 투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2012년 7년 만에 10승을 달성, 2013년 8개 구단 상대 최초 승리투수를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큰 부상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스스로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결국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불굴의 의지' 배영수와 참으로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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